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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예수의 선포 6 -활짝 열려있는 하나님 나라 (눅 14:15-24, 마20:1-16)

서양의 전통신학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너무 중시하는 바람에 예수의 삶이 가지고 있는 ‘고통받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놓쳐 왔고, 지금은 예수의 삶에 주목하고 있다. 그런데 많은 한국 교회가 서양의 전통신앙을 고집하고 있는 역설을 주목하고 본 칼럼에서는 예수의 삶을 계속해서 다루고 있다.       물론 이것은 한국 교회가 서양의 새로운 신학적인 경향을 따라야 한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서양도, 동양도 다 감당하지 못할 신비요, 기독교 신앙의 참된 내용이다. 결국 우리는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모두 다 아우르는 ‘참된 예수(real Jesus)’, ‘총체적 그리스도(total Christ)’를 이해하고 그 예수를 살아가야 한다. 예수의 선포는 이러한 균형과 깊이로 우리를 인도하는 마중물이다.       누가복음 14장:15-24절에서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초청에 대해서 선포하신다. 잔치에 초청받은 자들이 밭을 사고 소도 사고 장가도 들고 해서 초청에 응할 수 없다고 하자(14:18-20), 잔치의 주인은 종들에게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 몸 불편한 자들, 앞 못 보는 자들을 데려오고(14:21), 큰길과 시골길로 가서 (사람을) 억지로 다 데리고 와서 ‘내 집을 채우라’고 한다(14:23).     마태복음 20장 1-16의 하나님 나라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일한 자들과 오후 늦게 일을 시작한 자들이 모두 동일한 품삯을 받는다. 하루 종일 일한 자들이 원망하자 포도원 주인은 “나는 품삯에 대한 약속을 지켰고,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하며,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될 것이다”(마20:13-16)고 말한다.     두 이야기는 하나님의 사랑이 선민 이스라엘로부터 고난받는 자들과 모든 사람에게로 확장되거나, 하나님의 은총이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동일할 것(같은 품삯)이라는 구속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신비에 대해서 엿볼 수 있다.     가장 놀라운 점은 하나님 나라의 개방성이다. 특별히 고난받는 자들에게 활짝 열려있다: 가난한 자, 몸 불편한 자, 앞 못 보는 자!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다. 더 나아가 큰길과 시골길에서도 강권하여 데려와 하나님 나라를 채운다. 한국어 성경은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오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원문에는 목적어가 생략되어 있다. 데려와야 할 대상을 고난받는 자들로 이미 언급했기 때문에 생략했을 수도 있지만, 목적어를 생략함으로써 하나님 나라가 전 인류를 향해 열려있다는 것을 시사할 수도 있다. 심지어 그냥 무심하게 지나가는 자들을 억지로 끌고 올 정도로 하나님 나라는 열정적으로 개방적이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 하나님 나라는 ‘불공평’하게 개방적인 나라다. 종일 일한 자들이나 한 시간 일한 자들이 모두 동일한 삯을 받는다. 그렇다면 불공평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 불공평의 동기가 명확하다: 장터에서 놀고 서 있는 자들(마20:3), 종일토록 일거리가 없어서 놀고 있는 자들(마20:6)을 불쌍히 여겨서 그들에게도 같은 은총을 베푸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선하심이다(마20:14-15).     하나님 나라는 일자리가 없어서 놀고 있는 자들에게까지 개방적이다. 그들이 왜 놀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 수는 없지만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다”(마20:7)는 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게으름을 넘어서서 사회적, 구조적 문제로 유추해 볼 수도 있다. 우리 모두를 애타게 찾아다니며 하나님 나라로 초청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일과 삯의 균등한 주고받음’이라는 속 좁은 개별적 평등에 집착하는 모두의 마음을 활짝 열게 하는 기쁜 소식이기를 소망한다. 차재승 / 뉴브런스윅 신학대학원 교수삶과 믿음 하나님 예수 하나님 나라 서양도 동양도 선민 이스라엘

2022-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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